공사 집무실과 문으로 연결된 이곳은 바로 공사의 침실입니다. 이곳의 용도가 공사의 개인숙소였던 만큼, 사적인 공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단지 공사 혼자서 이곳에 머물렀던 것은 아닙니다. 역대공사와 대리 공사들 중 일부는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이곳에서 함께 생활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곳에는 당시 역대 공사 부인들이 사용했던 화장대와 조선에서 가져왔던 2층 농 등을 함께 배치해 당시 모습을 재현하였습니다.
한편 이곳은 1890년 10월 이채연 대리공사와 부인 성주배씨 사이에 아들 이화손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이때 태어난 아들 이화손은 안타깝게도 생후 2개월 만에 병으로 목숨을 잃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처럼 공사 침실은 공사 부부의 일상적인 생활공간이자,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침실은 공사관 건물 2층의 동남쪽에 위치한 공간으로, 아침에 해가떠서 저녁에 해가 질 때까지 동쪽과 남쪽으로 향한 여러 창호들로 햇살이 고르게 들어와 채광도 매우 좋은 곳입니다. 그만큼 이곳은 매우 아늑한 생활공간이었습니다.
공사 침실과 연결된 욕실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당시 모습을 추정해 복원하였습니다. 줄을 매단 손잡이가 달린 수세식 변기와 욕조도 19세기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이 공간은 당시 조선 사람들의 입장에서 매우 생경하고 놀라운 공간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이 생활하던 한옥의 구조와 크게 달랐던 점은 화장실이 집 안에 설치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공간은 당시 크게 달랐던 조선과 미국의 생활양식의 차이를 직접 실감할 수 있었던 곳이 었을 것입니다.
CLOVA Dubbing의 AI 보이스로 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