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역사적인 건물은 19세기말 워싱턴DC에 개설된 32개의 외국 공사관 중 원형을 간직한 유일한 건물로서, 우리나라가 서양국가에 설치한 최초의 공사관입니다.
건물은 1889년 2월부터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앗아갈 때까지 16년 9개월간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공사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사관으로 사용될 당시 1층은 접견공간으로, 2층은 집무실 등 업무공간으로, 3층은 공관원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객당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객당은 공사관을 방문한 손님들을 맞는 접견장소였습니다. 현재 객당의 모습은 1893
년 7월 뉴욕에서 발행된 <데모레스츠 패밀리 매거진(Demorest’s Family Magazine)>에 보도된 ‘워싱턴의 외국 공사관(The Foreign
Legations at Washington)’이라는 기사에 함께 실린 사진작가 프랜시스 B. 존스턴(Frances B. Johnston)의 사진 속 모습으로 재현되었습니다.
당시 기사에 묘사된 객당의 모습은 “이 조선공사관의 각 방들은 증기난방 시설, 벨 모양의 전등에서부터 형형색색의 비단천이 씌워진 소파들과 각종 봉제소품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이면서 고상한 최신 장식품들로 꾸며졌다. 예술가의 나라 조선답게 화사한 방들은 세련된 감각을 선보였다......창문이 많은 객당은 은은하게 대비되는 색감의 양단으로 멋지게 꾸며져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진 속 모습대로 객당의 샹들리에, 벽지, 카펫, 병풍은 새롭게 제작했으며, 가구는 당시 사용하였던 골동품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또한, 객당의 벽지는 1896년 이곳을 방문했던 한 신문기자가 공사관 방문기에 기술한 “vivid green” 문장을 참고해 녹색의 벽지를 부착해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재현된 객당은 19세기말 미국 속 또 다른 조선의 모습이었으며, 이곳에서 많은 현지인들과 외교관계를 넓혀가던 뜻 깊은 교류의 공간이었습니다.